: 티무역의 독점권을 상실한 청나라
청나라 시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차들의 이름이 명명되었다. 또한 서양에 대한 독점적인 티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였지만, 결국에는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키고 차나무를 인도, 스리랑카에서 재배하면서 독점권을 상실한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중국 티 문화의 격동기 청나라 시대에 대해 알아본다.
티의 확산기, 청(淸)
17세기 여진족의 후예 누루하치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연 청대(淸代, 1644~1914)는 중국 티의 역사에서도 또 하나의 중요한 시대다.

중국 청나라를 세운 태조, 누루하치의 영정 모습.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유명 티들의 대부분이 이 시대에 명명됐다. 대표적인 예로 벽라춘(碧螺春, Bi Luo Chun)과 용정(龍井, Long Jing)은 청나라 최전승기의 황제인 건륭제(乾隆帝, 1711~1799)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청나라 시대에 차명이 붙여진 중국의 대표적인 녹차 동정벽라춘.
벽라춘은 장쑤성(江苏省) 둥팅산에서 생산되는 초청 녹차이다. 차나무를 과수와 함께 교대로 심어 찻잎에서 과일의 화사한 향이 풍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용정은 저장성 항저우의 서호(西湖) 인근의 룽징(龍井), 시펑(獅峰), 윈치(雲栖) 등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초청 녹차로서 ‘사절’이라는 유명한 특징이 있다. ‘선명한 초록’, ‘부드러운 향’, ‘싱그러운 단맛’, ‘아름다운 모양’이다.

청나라 시대에 이름이 붙여진 용정차. 사진은 서호용정의 찻잎 모습이다.

한편, 청나라 시대는 티 무역을 두고 영국과 청나라 간의 ‘아편전쟁’이 발생하고., 중국 일변도의 티 무역에서 독점권을 상실한 격동기였다. 이 시대는 유럽에서 티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차나무의 재배지가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을 비롯해 인도, 아프리카, 스리랑카 지역으로 확산, 중국이 서양 세계에 대한 티 무역의 독점권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또한 티 무역에서 중국의 예속국이었던 영국도 이때부터는 인도, 스리랑카 등 식민지의 개척을 통해 중국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티 생산 및 소비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19세기 영국이 인도에 조성한 싱겔 다원. 영국의 홍차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조성된 다원이다.
중국의 근현대 티 문화
중국은 20세기 초에 들어 전제황권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일제 침략기, 1949년 중국 공산당의 혁명 등 정치적인 큰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 문화적인 관습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한 가운데 문화대혁명(1966~1976)은 티 문화를 결정적으로 쇠퇴시켰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홍위병을 앞세워 과거의 봉건주의적, 유교적 잔재들을 일소에 없애는 급격한 혁명 운동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의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추진한 개방 정책의 물결로 다시 중국의 티 산업은 활기를 띠게 된다. 여러 유명 찻집들이 다시 등장했고, 대학교와 농업학교에서는 티를 전문적으로 교육시켰다.
특히 과학을 기반으로 티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각종 연구소들이 설립되고, 티와 찻주전자 등 다기만 전문적으로 소장한 박물관들도 생겨났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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