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티의 시대 양식 ② 명대의 티 양식

: 티 문화 중흥기

명나라 시대에는 티의 형태가 오늘날의 ‘산차(散茶)’로 바뀌고, 음다법도 찻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 마시는 방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티를 준비하는 다기들도 새롭게 개발되었는데, 이때 차호(茶壺)와 개완(蓋碗)도 등장하였다. 또한 중국 녹차의 큰 특징인 ‘살청(殺靑)’이 처음 등장하고, 6대 분류의 티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중국 티 문화의 중흥기였던 명나라 시대의 티 양식에 대해 알아본다.

한편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대(明代, 1368~1644)에 이르면서 티 문화는 다시 부흥기를 맞는다. 티의 준비 양식에도 일대 변화가 일어났는데, 오늘날의 티를 준비하는 방식의 대부분이 이때 틀을 마련하였다.

먼저 명대에는 그동안 황제 등의 조정에 공납으로 바쳤던 ‘용단(龍團)’이나 ‘봉병(鳳餅)의 티들이 ‘산차(散茶)’의 형태로 바뀌었다. 용단, 봉병은 순금의 용이나 봉황의 인이 찍힌 연고차(研膏茶) 형태다. 연고차는 딱딱하게 굳혀 만든 형태의 티를 말한다. 용단은 황제, 친왕, 성주에게, 봉병은 황족, 학사, 스승에게 바치던 것이었다.

이 용단과 봉병은 가공 방식이 어려워 백성들에 고통을 주는 폐해가 있었는데, 황제가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 칙령으로 티를 ‘산차’의 형태로 만들도록 한 것이다. 산차는 찻잎이 낱낱으로 흩어져 있는 형태의 차를 말한다.

산차 형태의 백차. 찻잎이 낱낱이 흩어진 형태이다.

이렇게 티가 산차의 형태로 바뀜에 따라, 티를 우리는 방식에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즉 산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 마시는 오늘날의 ‘음다법’이 생긴 것이다. 이와 함께 티를 준비하는 다기들에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예를 들면, 차병(茶甁)이 차호(茶壺)로 대체되었고, 개완(蓋碗)이 티를 우리는 가장 적합한 다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티를 우리는 데 사용되는 대부분의 다기들이 이 시대에 발명되었다.

명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다기인 차호(茶壺).

한편, 명대에는 녹차를 가공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즉 오늘날 중국 녹차의 대표적인 가공 과정인 ‘살청(殺靑)’ 과정이 생긴 것이다. 이 살청 과정은 찻잎에 열처리를 가하여 산화효소를 변성시켜 산화를 억제하는 과정이다. 명대에 등장한 이 살청 방식은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뜨거운 솥뚜껑에 찻잎을 놓고 비비면서 덖는 ‘초청(炒靑)’ 방식이다.

명명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녹차의 열처리 작업인 초청(炒靑) 과정.

이 초청 과정을 거치면 찻잎은 찻잎 속에 든 산화 효소가 비활성화되어 향미가 급격히 변하면서 수분과 쓴맛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러한 초청 방식은 중국의 정통 제다법으로 오늘날까지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명대에는 송대까지 녹차에 생산이 집중되었던 것과는 달리, 점차 녹차, 백차, 황차, 흑차(보이차), 홍차, 청차(우롱차)의 6대 차류들이 처음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홍차는 1590년~1600년경에 처음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명대에 처음으로 그 틀을 마련한 오늘날의 다기들.

이와 같이 명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티의 준비 방식과 중국 녹차의 정통적인 제다법,  각종 티를 우리고 준비하는 다기의 틀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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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HOTEL & RESTAURANT>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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